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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독립운동가최재형 상' 공모전 개최(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는 제5회 최재형 상 공모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최재형 선생이 실천한 '페치카 정신'에 합당한 사람을 추천 받아 최재형 상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접수방법은 최재형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서식을 다운 받아 작성해서 전자 메일 주소(choijaihyung@naver.com)로 접수하면 된다. 대상은 상금 1천만원과 상패가 주어지며 단체상은 명예로운 상패가 수여된다. 제1회는 2020년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년에 처음 시행되었다. 첫 번째 대상 수장자는 안산 고려인단체 '너머' 창립에 큰 역할을 했던 조영인 대표가 수상했고, 2회는 옥수수 박사로 널리 알려진 김순권 박사가 수상했다. 제3회 수상자는 김준일 한문화재단 이사장이 받았고, 제4회는 이태석재단의 구수환 이사장이 수상했다. 제3회 4회 수상자는 상금 1천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제1회 단체상 수상은 영산그룹(대표 박종범), 제2회는 수산그룹(대표 정석현), 제3회는 쓰리테크놀로지(대표 이장우)가 받았다. 4회 수상기업은 한국콜마(윤동한)가 받았다. 이 외에 특별활동가 상은 상패와 약간의 부상이 있는데, 1회는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민족학교를 운영하는 김 발레리아 교장선생에게 주어졌고, 제2회 때는 안산 '너머'의 기초를 놓은 김승력 대표가 받았다. 제3회 활동가 상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세종학당을 운영하고 있는 허선행 교장이 받았고, 작년 4회 때는 활동가 상이 두 명이었는데 폴란드 전 한인회장 남종석과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고려신문사 한 블라디슬라브 씨가 받았다.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은 "제2, 제3의 최재형 선생 같은 분들이 발굴 되어 최재형 선생의 페치카 정신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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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 부부 합장 기념 음악회 성료독립운동가 故 최재형 선생 부부의 103년만의 합장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렸다.(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이사장 문영숙)는 11월 17일 저녁 7시부터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최재형부부 합장 기념 후원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번 음악회에는 용산구청과 마론윈드 오케스트라가 힘을 보탰다.앞서 광복절을 하루 앞둔 지난 8월 1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서 ‘백 년 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이란 슬로건 아래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 부부의 합장식이 거행됐다. 부부는 지난 1920년 최 선생 서거 이후 103년 만에 함께 영면에 들었다.마론윈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진행되는 음악회는 ▲최재형 선생 생애 영상 ▲최재형 선생님(베이스/바리톤 윤종민) ▲백학(배우 황건) ▲최재형 / 태극기(역사어린이합창단) ▲향수 (윤종민·황건) ▲독도는 우리 땅 ▲기념사업회 소개 및 감사패 증정 ▲아리랑 (Arirang) ▲용산 (Mountain of Dragon) ▲Auld Lang Syne(윤종민·황건·역사어린이합창단) 순서로 이어졌다. 문영숙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장은 "올해로 창단25주년을 맞은. 마론윈드 오케스트라도 재능기부로 웅장한 무대를 만들어 주었고 베이스바리톤 윤종민교수님 배우황건님도 재능기부 출연으로 감동을 주었다. 특히 윤종민교수의 최재형선생님 노래는 장중한 연주와 함께 더욱 빛났고 황건배우의 백학은 러시아독립운동을 상기시켜 주었다. 듀엣으로 두분이 부른 향수는 당시 고향과 조국을 떠나 일제와 싸우셨던 선열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짐작해보는 시간이었다.다음에는 최재형 장군의 의병정신을 주제로 한 무대를 올리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음악회 무대밖에서는 24개의 액자로 최재형사료와 사업회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도 함께 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는 국민모금액을 최재형묘 복원 사진집을 발간해 오시는 분들께 전달했고, 그동안 최재형기념사업회를 후원해준 기업. 한국파마.아시아발전재단 조남철상임이사. 면사랑 정세장 사장님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또한 최엘레나 여사를 국내로 모셔오는데 큰힘을 실어준 엘지 유플러스와 손정일교수님에게도 감사패를 전달했다 최재형 선생은 아홉 살 때 부모를 따라 시베리아 연해주로 이주한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축적한 막대한 부를, 조국 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사용했다.러일 전쟁 이후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총재가 되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대동공보(大東共報)를 인수해 재창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사를 게재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과 한인사회에 대한 기여로 '시베리아 페치카'라고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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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치카' 최재형 부부, 순국 103년만에 국립서울현충원서 합동안장식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과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가 순국 103년 만에 고국 땅에 도착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합동 안장됐다.1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최 선생 부부의 합장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이종찬 광복회 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독립 관련 보훈단체장, 회원, 최재형 선생의 유족 등이 참석했다.최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으나 이른바 '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돼 현재까지도 빈터로 남아있다. 앞서 최 선생의 묘는 1970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에 조성됐으나 2009년 가짜 후손에 의해 다른 시신이 묻혔다는 사실이 확인돼 빈터로 남게 됐다.이후 유족들은 멸실된 묘의 복원을 지속적으로 희망해왔음에도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하도록 규정한 국립묘지법에 따라 묘를 복원할 수 없었다.이에 국가보훈부는 유골이나 시신이 없는 순국선열의 위패와 배우자의 유골을 함께 묘에 합장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최재형 선생을 부인 최 엘레나 여사와 함께 국립묘지에 합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최 선생은 ‘페치카’로 불렸다. 러시아어로 ‘난로’라는 의미로, 평생 시베리아 동포들을 돌봐줬던 그의 독립운동에 투신한 뜨거운 열청에 대한 존경의 의미이다. 1907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안중근 의사가 "집집마다 최재형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그는 시베리아 동포들의 ‘대은인’으로 추앙으면서 '러시아의 페치카'라고 불렸다고 한다. 최재형 선생은 9세 때 부모를 따라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하여 사업가로 자수성가해 모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조국독립과 수십만 시베리아 이주 동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왔다. 그러나 일본군은 1920년 최 선생이 지원한 무기를 바탕으로 치른 청산리ㆍ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우수리스크를 급습해 최 선생을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족들과 동포들은 최 선생의 유해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이후 최 선생의 부인 최 여사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과 가족까지 돌보다 1952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홀로 잠들었다 합장식에는 최 선생의 유족들과 박민식 장관, 이종찬 광복회 회장,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러시아 사할린 동포를 대표하여 참석한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은 "러시아 동포들은 말도 배우기 전에 집안에 걸린 최재형 사진을 보면서 '페치카'라는 말이 각인되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었다. 오늘 두 분의 합동봉환식을 맞이하게 되어 기쁘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재형기념사업회 문영숙 회장은 "최채형 선생은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同義會)를 조직하고,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고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부인 최 여사는 자본가의 가족이란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되어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안중근 의사의 남은 가족까지 돌보다 1952년 키르기스스탄에서 홀로 잠들었다."고 전했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날 추모사에서 "최재형 선생님과 같이 일신을 독립운동에 바치시고 그 곁에서 내조하며 독립운동을 함께하신 분들이 있어 광복을 쟁취할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며 "이제 대한민국이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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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선생 배우자 유해 한국 도착…사후 70여년 만에 국내 봉환국가보훈부는 8일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의 배우자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 여사의 유해를 키르기스스탄에서 사후 70여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봉환했다고 밝혔다. 국내로 봉환된 최 여사의 유해는 이날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해 서울현충원 봉안식장에 임시 안치된다. 최재형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의 최재형 선생 기념관(구 최재형 선생 고택) 뒤편 언덕에서 채취된 흙도 오는 11일 국내로 반입된다. 이후 12~13일 서울현충원 현충관의 국민추모공간에 최재형 선생의 위패와 함께 안장된다. 12일부터는 러시아 등 해외 각국에 거주하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 파벨, 증손자 최 표토르, 외증손녀 박 따띠아나 등 직계 후손들이 귀국해 유족으로 함께한다. 제78주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는 ‘백년만의 해후, 꿈에 그리던 조국 대한민국’을 주제로 부부 합장식이 거행된다. 원래 최재형 선생의 묘가 있다가 멸실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08번 자리에 안장된다. 최 여사(1880-1952)는 1897년경 최재형 선생과 결혼해 슬하에 3남 5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형 선생이 국외 항일조직인 동의회를 조직해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최 여사는 대가족을 돌보며 남편인 최재형 선생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특히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로 순국하자 그의 남은 가족들도 보살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 중 3남 최 발렌틴과 5녀 최 올가의 회고에 따르면, 최재형 선생 부부는 고성 한번 오가는 일 없이 서로 깊이 존경하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좋은 본보기가 됐고 전해진다. 하지만 최재형 선생이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순국하자 최 여사는 자녀들과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고, 1922년 러시아가 공산화되면서 자본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키르기스스탄으로 유배된 이후 1952년 사망해 비슈케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보훈부는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함께 키르기스스탄 현지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한 유해 수습 등 준비 절차를 모두 마치고 지난 7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최 여사의 유해를 대한민국으로 모셔왔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이제라도 여사님을 해방된 조국으로 모셔와 서울현충원에 최재형 선생의 부부합장묘를 조성하게 돼 너무나 뜻깊다”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으나 유해마저 찾을 수 없었던 순국선열을 단 한분도 소홀함 없이 예우하는 일류보훈 실현을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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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증보판] “멕시코로 팔려 간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영숙의 '에네껜 아이들'멕시코로 팔려 간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청소년 소설. 안창호 선생과의 만남과 쿠바 이민사를 추가한 '에네껜 아이들'(개정증보판)(서울셀렉션, 2022.06.20.)이 출간되었다. 외세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탓에 피페한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 사람들의 아픔을 청소년을 위한 역사소설로 풀어냈다. 이역만리 멕시코에서 자유를 뻬앗기고 식민민족이 당해야 하는 노예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의 참담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원작은 올해의 청소년도서(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 책따세 추천도서, 아침독서 청소년 추천도서, 성장소설 50선(학교도서관저널 선정) 등으로 선정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 개정판은 멕시코 이민자들과 안창호 선생의 만남, 멕시코에서 쿠바로의 이민 여정을 전개하고,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덧붙여 새롭게 내놓았다. 1905년, 덕배와 덕배 아버지, 소녀네 가족, 감초 아저씨 부부 등 조선인 1,033명이 멕시코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태평양을 건너 멀고 먼 나라로 떠난다. 그러나 멕시코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노예 취급을 받으며 심한 노동에 시달린다. 그제야 일본 사람에게 속아 팔려 온 것임을 알게 된 이들은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고자 조선의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하지만 그사이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만다.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농장 감독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소녀를 연모하던 덕배는 소녀의 죽음에 몹시 괴로워하고, 소녀의 동생 윤재는 농장을 탈출한다. 농장에서 계약 기간 4년을 다 채운 조선 사람들은 조선으로 돌아갈 뱃삯을 벌기 위해 메리다 시내로 가지만 그곳에서도 또 다른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고 서로를 위로하며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1905년 멕시코로 떠난 이민자들은 자발적 의사로 이주를 떠나간 것이 아니라 일제가 앞세운 일본 앞잡이 조선인들에게 사기를 당해 단기 계약을 하고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는 희망을 가지고 고국을 떠난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꼬임에 빠져 멕시코에 가서 일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문맹이었기에 계약서 내용은 알지도 못하고 멕시코에 도착한다. 이민자들은 낯선 땅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에네껜(용설란)의 칼날같이 날카로운 줄기에 살이 찢겨나가는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의 이민회사 인신매매단의 음모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1천여 명의 백성들을 낯선 땅으로 떠나보냈고, 그들이 돌아오려고 했을 때는 이미 대한제국의 국권이 일본에 넘어간 뒤였다. 잔류된 조선인들은 국적도 없이 멕시코에서 고향 갈 날만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 후 1921년 그들 중 288명이 쿠바로 이주했다. 저자 문영숙은 1953년 충남 서산 출생. 2004년 제2회 ‘푸른문학상’과 2005년 제6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검은 바다》, 《그래도 나는 피었습니다》,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독립운동가 최재형》 등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과 디아스포라를 다룬 청소년 역사소설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201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잊지 말아야 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어린 독자들에게 알리는 소설을 주로 쓰고 있다. 현재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안중근 홍보대사를 맡고 있으며 코리안 디아스포라 작가로 인문학 강연, 롯데크루즈 선상강연을 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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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페치카 최재형 지사 순국 102주기오늘은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 최 페치카 최재형 지사 순국 102주기입니다 저는 오늘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또 순국선열들의 피로 일군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최재형 선생의 영전에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조국을 잊은 적이 없건만 조국은 최재형 선생을 두 번이나 버렸습니다. 한번은 이념의 장벽에 가려 긴 망각으로 버렸고, 한번은 국립묘지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연해주 항일투쟁의 페치카 최, 최재형 선생은 이제 우리가 예우에 맞게 모셔야 합니다. 최재형 선생은 102년 전인 1920년 바로 오늘 4월 7일에 재판도 없이 일본의 총탄에 돌아가셨습니다. 대한민국은 사후 42년인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1970년 11월 17일에 바로 추모식을 하고 있는 이곳 서울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위에 묘를 만들어 모셨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목숨을 바쳐 항일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시신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허묘로 모신 분들이 있고 최재형 선생의 묘도 허묘였습니다. 당시 후손으로 등록된 사람은 최규흠이란 사람이었습니다.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당시 철의 장막이라 일컫던 소련에 살다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야 대한민국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1995년에 독립운동가 후손초청사업으로 최재형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와 손자 최 발렌틴이 한국에 왔고 최재형의 후손으로 등록되었던 최규흠이란 사람과 DNA검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최규흠이 가짜후손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짜후손이 무려 30여년 동안을 유족연금을 받았던 것입니다. 2004년에야 비로소 최재형의 막내딸 최 엘리자베타가 유족연금 수급자로 등록되었고 2005년 사망하여 손자 최 발렌틴이 이어받았습니다. 2006년, 최 발렌틴은 국립서울현충원의 안내를 받아 애국지사묘역 108위 최재형의 묘에 참배를 했고 그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후 2009년에 최 발렌틴이 현충원에 참배하려 했으나 묘는 멸실되었고 묘가 있던 빈 터에 꽃다발을 놓고 망연자실한 채 서 있는 사진을 남겼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08위는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묘였습니다. 후손이 가짜로 판명되어도 그 묘의 주인은 최재형 선생이십니다. 후손만 바꾸면 되는데 후손에게 연락도 없이 묘를 멸실시켰다는 것은 최재형 선생을 독립운동사에서 삭제시킨 것과 같습니다. 행정착오로 가짜후손을 등록했다면 진짜 후손이 나타났을 때 시행착오를 밝히고 제대로 모셨어야 합니다. 후손들은 그래도 할아버지의 조국이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구나 하면서 참배를 하고 그 다음에 왔을 때 또 참배를 하기 위해 찾아갔는데 후손에게 연락도 없이 묘는 없어지고 빈터만 보는 손자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당시 최발렌틴은 언어도 통하지 않아 어디에 하소연도 못한 채 그냥 돌아갔습니다. 손자는 2010년 자신이 러시아어로 출간한 『최재형』 책에 사진과 함께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이러한 사실도 모른 채, 2015년 부부위패비 5번에 겨우 부부의 이름만 올렸습니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최재형 선생의 후손들은 어마어마한 재산과 생명까지 바친 연해주 항일독랍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선생을 200여 명이 넘는 부부위패비 한 귀퉁이에 이름만 올린 것이 항상 죄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2020년,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은 최재형 순국 100주년을 맞아 보훈처와 청와대를 찾아가 후손도 모르게 멸실시킨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시켜 줄 것을 요청했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만 내세워 반드시 유골이나 시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정부가 잘못한 일이 밝혀지면 새정부가 바로잡아야 하고, 그렇게 해야만이 순국선열의 예우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법이 바뀌었다고 잘못된 행정을 그래도 답습한다면 그 또한 과거의 행정착오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입니다. 보훈처에 알아본 결과 30여년 간이나 가짜후손 행세를 한 최규흠은 이름만 있을 뿐 모든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현재 최규흠은 작고한 상태입니다. 이는 누가 봐도 묘를 멸실시키면서 가짜후손의 기록도 삭제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는 누가봐도 행정실수를 감추기 위해서였죠. 현재 최재형 선생의 부인 최 엘레나페트로브나는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의 희생자로 머나먼 키르기스스탄 비쉬켁 공동묘지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요청합니다.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최재형 부인의 유골을 봉환해올테니 1970년 11월 17일 조성되어 2006년까지 존재했던 최재형 선생의 묘를 복원하여 부부합장묘를 쓸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최재형기념사업회와 최재형 후손들은 키르기스스탄 대한민국 대사관과 협력하여 올해 부인 최 엘레나 페트로브나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올해는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 수교 30주년입니다. 현재 후손들한테도 동의서를 다 받아놓았습니다. 부인의 유골과 우수리스크 최재형 선생의 집 마당에서 흙 한 줌을 가져오거나, 최재형 선생의 유품을 애국지사 묘역 108위에 부부합장묘로 복원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올해 8월 15일은 광복 77주년이며 최재형 선생 탄신 162주년입니다. 이렇듯 뜻깊은 해에 최재형 부부 합장묘를 애국지사 묘역 108위에 복원해주신다면 새정부는 상징적으로 순국선열을 제대로 모셔서 과거정부와 차별화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해 홍범도 장군의 훈격을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승격시켜 유해를 고국으로 안장했습니다. 훈격을 최고등급으로 승격한 이유가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초기 독립운동의 태동지였던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였고 한인들의 페치카였습니다. 엄청난 재산과 목숨을 바쳤고 당시 연해주 한인들에게 난로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1962년 서훈심사는 최재형 선생의 신분이 낮고 후손도 없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어 있다는 것을 관심을 가진 분들은 다 공감합니다. 더더구나 연해주에서 최재형 선생과 동시기 활동한 분들의 서훈은 거의 2등급인 대통령 장이고 1990년 이후 서훈을 받은 분들도 모두 대통령장입니다. 최재형 선생의 서훈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데 재심의 조항이 없어서 조정을 못한다고 합니다. 미비한 조항은 보완하면 되고, 없는 조항은 필요시 새로 만들어 재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법이 없어 못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나 같습니다. 최재형 선생은 함경북도 경원이 고향이라 지원해 줄 지자체도 없습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구성원들은 최재형 선생과 혈연도 지연도 없는 순수한 단체로 그 어떤 이권도 사리사욕도 없습니다. 오로지 훌륭한 삶을 살다 가신 최재형 선생을 제대로 알리고 선양하는 단체입니다. 오늘 최재형 순국 102주기를 맞이하여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도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오늘 나눠드린 묘지복원 책자와 그 안에 묘지복원 동의서가 들어있습니다. 펜도 넣었으니 돌아가실 때 묘지복원사업에 찬성하는 서명을 꼭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최재형 선생 102주기를 추모하며 기념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4월 7일 사단법인 독립운동가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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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순국100주년, 특별활동가상 '최재형민족학교' 김발레리아 교장올해 최재형(1860-1920)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선정한 특별활동가상에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세워진 최재형 민족학교를 이끄는 김발레리아 교장이 선정됐다. 김 교장은 고려인들에게 절실한 한글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한글 교육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해온 공로를 높게 평가받았다. 상금은 500만원. 최재형기념사업회는 안중근 의사가 1909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하는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장관) 최재형 선생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올해 순국 100주년을 계기로 제정했다. 지난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 문화재단이 최재형 가문에 수여한 상금 5000만 원을 유족들과 합의해 상금 재원으로 쓰기로 했다. 문영숙 이사장은 "위탁받은 상금 재원이 소진되면 사업회가 이어받아 매년 최재형 상을 계속 수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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